디지털 기념관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 여성 기금
디지털기념관 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일본정부의 대응과 아시아여성기금의 설립 >아시아여성기금의 탄생과 사업의 기본 성격

 아시아여성기금의 탄생과 사업의 기본 성격
 
1996년9월에 낸 '아시아여성기금' 팜플렛 제2호

기금 설립에 대해 한국정부는 "일부 사업에 대해 정부예산 지원이라는 공적 성격이 가미되어 있으며", "당사자에 대해 국가가 솔직한 반성 및 사죄를 표명해"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다"고 말해 이를 '성의 있는 조치'로서 환영하는 의향을 보였습니다. 한편에서 시민단체의 대부분은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청하며 '민간단체'에 의한 '위로금' 지급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정부의 태도도 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민단체는 그 후 문제의 본질은 전쟁 범죄라며 법적 책임을 인정할 것과, 책임자 처벌을 요청하며, 유엔인권위원회 등에서 이러한 주장을 호소하였습니다.

유엔인권위원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쿠마라스와미씨는 1996년 1월4일 인권위원회에 보고서 부록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한 북한, 한국, 일본에서의 현지조사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위안부' 문제를 '군사적 성노예제'의 사례였다며, 일본정부는 국제인도법 위반에 대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만 쿠마라스와미씨는 일본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점에 대해 "출발점으로서 환영한다"며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위안부'의 운명에 대한 일본정부의 도의적 배려의 표현"이라고 말하였으나, 이것으로 정부가 "국제 공법하에서 이루어지는 '위안부'의 법적 청구를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일본정부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補償)을 하고, 자료를 공개하고 사죄하고, 역사 교육을 검토하고 책임자를 가능한 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권고였습니다.(전문은 여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초기의 '기금'은 발기인, 이사, 운영심의회 위원의 3자가 하나가 되어, '기금'사업의 골격을 만들기 위한 토론을 거듭하였습니다. 그 후 정부 관계자와도 논의를 거친 끝에 '기금'사업의 기본 등이 정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명확히 정식화한 것은 1996년 9월에 발간된 '아시아여성기금'의 팸플릿 제2호에서입니다.

발기인 이사회 운영심의회에 의한 3자회담

우선 아시아여성기금은,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것에 기초하여 국민적인 보상 사업(償い事業 atonement project)을 정부와 2인3각으로 실시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부 내지 정부로부터 위임 받은 민간단체가 인정한 '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실시됩니다.

 

국민적인 '보상 사업'은 3가지 골자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사업은 일본총리의 서한입니다. 서한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군의 관여하에서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깊은 상처를 입힌 것에 있다며 수많은 고통을 겪고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께 도의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고 합니다.

'위안부'였던 여성에 대한 일본총리의 사죄의 서한

또한 역사를 직시하고 이것을 후세에게 바르게 전달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기금은 이 서한을 '위안부'였던 여성 한 분 한 분께 전달합니다. 그리고 기금은 정부와 국민의 입장을 한층 더 분명히 피해자 분께 전달하기 위해서 '기금' 이사장의 편지를 첨부하기로 하였습니다

'위안부'였던 여성에 대한 일본총리의 사죄의 서한

근계

이번에 정부와 국민이 다 함께 협력하여 추진하고 있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통해 종군위안부로서 희생되신 분들께 우리 나라의 국민적인 사죄를 표하는 사업이 행해짐에 즈음하여 저의 심정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이른바 종군위안부문제는 당시 구일본군의 관여하에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입니다. 저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 양면에 결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무거움으로부터도 미래를 향한 책임으로부터도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죄와 반성의 뜻에 입각하며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며 이것을 후세들에게 바로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부조리한 폭력 등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의 앞으로의 인생이 평온하시기를 충심으로 비는 바입니다.

경구
1996년
日本國内閣總理大臣 橋本龍太郎
(역대서명:小渕恵三, 森喜朗, 小泉 純一郎)



'위안부'였던 여성들에 대한 이사장의 편지

근계

일본 정부와 국민의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은 '종군위안부'로서 종사하도록 강요받아 치유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겪은 귀하에게 일본 국민의 보상(償い)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전쟁때 구 일본군 관여하에 다수의 위안소가 설치되어 그 곳에 많은 여성들이 끌려와 장병의 '위안부'로서 종사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16,7세의 소녀들까지도 포함된 젊은 여성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채 모집하거나 전쟁하에서는 직접 강제적인 수단이 사용되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귀하가 그 희생자중의 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여성의 근본적인 존엄성을 짓밟은 잔혹한 행위였습니다. 귀하에게 가해진 행위에 대해서는 총리의 서한에도 인정되어 있는 바와 같이 현재의 정부와 국민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습니다.저희들도 귀하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귀하는 전쟁중에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후 50년이란 긴 세월을 깊은 상처와 잔혹한 기억을 안고 고통스런 생활을 보내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하에 '여성을 위한 아사아평화국민기금'은 정부와 함께 국민에게 모금을 호소해 왔습니다. 양심이 있는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우리들의 호소에 응하여 입금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성금과 함께 보내온 서한은 일본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보상(償い) 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사과말이나 금전적인 대가로 귀하의 생애의 고통이 지워지리라고는 엄두도 못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결의의 뜻으로 이 사과금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은 계속해서 일본 정부와 함께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보상(償い)사업'의 하나로서 의료 복지 지원 사업 실시에 착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밝히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한 자료 조사 연구 사업도 실시해 나가겠습니다.

귀하가 밝혀주신 까닭에 저희는 새로이 과거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고통과 용기를 일본 국민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귀하의 앞날이 편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헤이세이 8년 (1996년)
재단법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이사장 하라 분베이 (原 文兵衛)
(역대서명: 村山 富市)

두 번째 사업은 '위안부' 였던 여성들에 대한 국민 '사과금(atonement money)' 지급입니다. 국민 모금에 기초하여 한 사람 당 200만엔을 전달합니다.

세 번째 사업은 의료복지 지원사업입니다. 이것은 일본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희생자에 대해 5년간 총 8.3억 엔의 정부자금으로 의료복지 지원사업을 실시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 규모는 각 국가 ∙지역의 물가수준을 고려해서 정하였습니다. 한국과 대만에 대해서는 한 사람당 300만엔 , 필리핀에 대해서는 120만엔에 상당한 금액으로 정해졌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실시한 네덜란드에서도 한 사람 당 300만엔 상당으로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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