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념관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 여성 기금
디지털기념관 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사업 >각국∙지역의 사업내용 - 필리핀

 각국∙지역의 사업내용 - 필리핀
 
[사업의 실시]  (기금담당자의 회상은 여기)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이 설립되자, 리라 필리피나는 국가의 보상을 요구하며 기금에 반대하였으나, 로라들 중에는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을 원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로사 헨손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라 필리피나는 아시아여성기금의 '사과금((atonement money)' 수령과 소송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조직내에 아시아여성기금을 받는 로라를 지원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 현지 신문에 게재된 고시

지급신청을 위한 서류에는 '위안부'가 된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술, 사진, 군시설 소재지 책임자의 서명이 들어간 증명서, 출생증명서 및 혼인증명서 등이 필요하였으며, 이 서류 작성은 번거로운 작업이었습니다.
 필리핀정부 태스크포스(필리핀정부 외무성, 사회복지개발성, 사법성, 보건성과 필리핀여성의 역할위원회로 구성된 '위안부' 문제 특별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이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의 필리핀측 협의기관이 되었으나, 태스크포스는 '위안부' 인정에 대해서는 사법성에, 의료 복지 지원사업에 관해서는 사회복지개발성이 실무 집행을 맡았습니다. 신청서류가 기금으로 제출되면, 사법성으로 넘어가 심사가 시작되었습니다.현지 신문에 게재된 고시

사법성의 검사들이 위안부였던 여성들을 면접하며 서류 내용을 확인하고, 자세한 정보를 청취한 후에 인정여부를 결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위안부'로 인정된 여성에게 주필리핀 일본대사관이 필리핀 외무성을 통해 총리의 사죄의 서한을 보냈고, 기금이 '사과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필리핀정부의 사회복지개발성을 통해 일본정부의 예산으로 1인당 120만엔 상당의 의료 복지 지원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상이 필리핀에서 실시하였던 사업의 내용입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1996년 8월13일, 필리핀의 각 신문을 통해 사업내용을 알렸습니다.(전문은 여기)

뒤이어 8월14일, 인정받은 4명의 여성중, 로사 헨손, 아나스타시아 콜테스(Anastasia Cortez), 루피나 팰난데스(Rufina Fernandez) 3명에 대해, 마닐라 호텔에서 '보상사업(atonement project)' 전달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주필리핀 일본대사가 총리의 사죄의 서한전문은 여기)을 전달하고, 기금의 아리마 마키코(有馬真喜子) 부이사장(당시)이 이사장의 편지와 '사과금(atonement money)' 목록을 전달하였습니다.

보상 사업 전달식 사진 왼쪽부터, 마리아 러사 핸선 씨, 아리마 마키코 아시아여성기금 부이사장, 아나스타시아 콜테스 씨, 루피나 펠난데스 씨
기자회견시,  '총리의 사죄 서한'을 들고 있는 피해자들

100명이 넘는 기자들 앞에서, 로사 헨손씨는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말했으며, 콜테스씨는 "50년 이상 괴로웠지만, 지금은 정의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팰난데스 씨는 "오늘 여러분 앞에 나온 것은 총리의 사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헨손씨는 기자회견에서 '이것으로 용서하는가'라는 질물에 대해, "1992년 9월에 이름을 밝히고 난 후, 몇 번이나 '용서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용서했다'고 대답해 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많은 동료와 일본의 지원자는 '국가보상이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없다'며 저를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아들이는 것과 재판을 계속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으며, 걸림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리아 로사 헨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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