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념관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 여성 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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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국∙지역의 사업내용 - 필리핀
 
대상국지역 신청접수실시기간 사업내용
필리핀 1996.8.13~2001.8.12  1) '사과금atonement money' (200만엔)
 2)의료・복지지원사업(120만엔 규모)
 3)총리의 서한 등
 
[배 경]

전후, 필리핀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 조인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배상, 그리고 재산 및 청구권의 문제는, 일본과 필리핀 간에서도 법적 해결이 끝난 것으로 되었습니다. 평화조약 제 14조(a) 1의 규정에 따라, 1956년 일본과 배상협정을 맺고, 이 협정에 의해,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5억 5천만달러 상당의 용역 및 생산물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자, 필리핀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대응하라는 요구가 나왔습니다.

1992년 6월, 일본군의 '위안부'로 종사하도록 강요 당한 여성이 세상에 나오도록 권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로사 헨손(Rosa Henson)씨가 결심을 하고, 인권활동가인 넬리아 산쵸(Nelia Sancho)씨 등과 만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같은 해 9월18일, 그녀는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로사 헨손씨는 강간을 당한 후, 게릴라 저항조직에 참가하였지만, 붙잡혀서 다시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일본군 사령부에 연행되어 9개월간 다른 여성들과 함께 감금된 상태로 계속해서 강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넬리아 산쵸씨는 핸선씨와 같은 피해자를 찾아가 청취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1993년 4월, 로사 헨손씨는 다른 18명의 '위안부'였던 분들, 로라(타갈로그어로 아줌마)들과 원고로서,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1994년, 이들은 리라 필리피나(LILA-Pilipina)라는 활동조직을 결성하였습니다. 원고인은 최종적으로 46명이 되었습니다. 이 소송은 지방재판소, 고등재판소에서 패소했으며, 2003년 12월25일 최고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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