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대전 중,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에서 많은 남성이 일본군 병사나 군속으로 징집되었고 동시에 여성은 '간호'나 '취사', '공장 작업'등의 명목으로 군이나 경찰에 소집되었습니다. 당시의 대만 사람들에게 일본군이나 경찰에 대드는 것은 살길이 막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외국에서는 하이난섬,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 버마 등, 대만 내에서는 각지에 있던 군항이나 군수공장에 인접한 시설로 보내지고, 그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나 약혼자가 병사로 군에 징용당하는 동안에 피해를 입은 여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피해자의 많은 사람들이 전지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수십년간이나 비밀을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출정하는 다카사고(高砂)의용병 부인들, 인솔하는 일본경찰관
야나기모토 미치히코(柳本通彦)저 "대만・다로코협곡의 섬광- 어느 원주민부부의 태평양전쟁" "대만・분사에 살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