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념관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 여성 기금
디지털기념관 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사업 >각국∙지역의 사업내용 – 네덜란드

 각국∙지역의 사업내용 – 네덜란드
 
[사업의 실시]

각서에는, 아시아여성기금은, 국민적 보상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2억 5500만엔을 네덜란드 피해자의 생활상태 개선을 위해 PICN에 제공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이 자금은 전액 정부의 갹출금에서 제공되었습니다. 2억 5500만엔에서 최고 1000만엔의 사무비용을 제외한 금액이, 사업을 희망하는 피해자를 위해 사용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PICN은 1998년 8월, 네덜란드와 세계각지의 신문, 기타 언론에 광고를 게재하면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광고 1998년 8월28일' '광고 1998년 8월28일'

'광고 1998년 8월28일'

1942-1945(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점령군에 의해, 매춘을 강요 당하고,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은 모든 분께 알립니다. 대상이 되는 피해자는, 당시 네덜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이러한 피해자에게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프로젝트 형태로 보상을 지불할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네덜란드사업실시위원회는, 이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등록을 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해서, 긴급히 1999년 1월15일까지(당일소인유효) 우편으로 등록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1999년 1월15일 이후의 요청은 접수받지 않습니다. 등록을 위임받은 다음 주소의 여성분에게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신청접수의 최종 마감은 1999년 3월 15일까지 연장되었습니다. 107명의 신청자가 제출한 신청서가 PICN에 의해 엄밀한 기준에 따라 검토되었으며, 사업 수급자로서 79명이 인정되었습니다.

인정 기준
  1. 사건 당시 네덜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자
  2.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점령군 군인에게 물리적으로 강제적으로 매춘을 강요 당하였던 자
  3. 장소, 빈도, 피해의 성격, 병의 원인 등도 고려함

사업의 내용은 확인된 피해자 각자에게 평균 약 5만길더(약 300만엔) 규모의 재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PICN이 피해자를 대상으로 의료복지면에서의 희망사항을 청취하고, 그 희망에 따라 사업항목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사업실시의 비용으로 각 개인에게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콕(Kok) 총리 앞으로 된 하시모토(橋本)총리의 서한(전문은 여기)은, PICN측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영어번역본의 사본을 1994년 4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총리의 서한은, 필리핀, 한국, 대만의 피해자에게 전달된 하시모토 총리의 사죄의 서한의 내용이 반복되어 있으나, 이 서한에는, "일본정부는 소위 '종군위안부문제'에 관해,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국민적 보상(atonement)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에 정부가 협력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의 기금의 의료∙복지 분야의 사업도, '국민적 보상(atomenent)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는, 1995년 무라야마(村山)담화도 담겨있으며, '사죄와 반성 apologies and remorse' 이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어, 명확한 인상을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시모토 총리로부터 콕 수상에 대한 서한하시모토 총리로부터 콕 수상에 대한 서한 하시모토 총리로부터 콕 수상에 대한 서한

총리의 서한의 사본을 전달 받은 많은 피해자는 마르게리트 해머 모노드 드 프로이드빌(Marguerite Hamer - Monod de Froideville) 위원장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이번 일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금액입니다. 또한 저는 일본 총리의 성명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후략)

이번 일은 제게 큰 만족감을 가져다 주었으며, 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시모토 총리의 사죄(apology)를 평가합니다. 저는 여동생에게 보내서 번역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쉬는 날 류마티스를 치료하러 갔을 때, 남편이 전화를 해서 이 서한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업금을 받고 대단히 기뻤으며, 또한 하시모토 씨의 서한에도 크게 만족했습니다. 그 긴 세월을 지나 마침내 {내가 받은 피해}가 한 형태로 인정받은(recognition) 것입니다. 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심신이 떨렸습니다.

귀하가 저를 위해 해 주셨고, 앞으로도 해 주실 모든 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금전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15세의 소녀였던 제가 받았던 그 비참함 전부가 인정된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 일이 지금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안고 살아가는 것을 견디어 왔지만 그 상처의 아픔을 덜어 줄 것입니다.

해머 모노드 드 프로이드빌위원장은 이들 편지를 대사관으로 전달하면서 "수급자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과거의 아픔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이 사업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으며, 특히 하시모토총리의 서한은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있다는 일종의 만족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1999년 11월 일본의 교과서회사가 자사의 중학교 사회교과서에서 '위안부로 강제적으로 전장에 보내졌다'라는 기술에서 '강제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려는 문부성에 정정을 신청하였다는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보도내용이 네덜란드에 전해지자, PICN의 해머 모노드 드 프로이드빌위원장은, 1999년 11월15일자로 일본대사 앞으로 서한을 보내 "관계된 피해자의 이름으로 또한 PICN위원과 고문 모두를 대신하여, 저는 이러한 의도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라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이 기사가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며 기사는 "피해자들의 감정에 매우 상처 입혔습니다." 교과서 기술내용이 실제로 약화된다면 "이러한 사람들의 감정은 또다시 극도로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교과서 기술의 변경은 하시모토 서한의 내용에 반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하시모토 서한의 말은 옳지 않으며 "아시아여성기금과 PICN의 존재 자체가 옳지 않다라고 설명될 수 있으며, 일본의 다음 세대가 제2차 세계대전중의 일본사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편지의 사본은 아시아여성기금에게도 직접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일본정부는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일본의 검정제도의 성격, 그리고 다양한 교과서 기술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무라야마(村山)담화 등에 제시된 정부의 역사인식을 다시 한번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2001년 7월13일 헤이그에서 네덜란드의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 종료식이 열렸습니다. 해머 모노드 드 프로이드빌위원장은 그 인사말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마르게리트 해머 위원장(회상은 여기)  

이 사업은 전후 53년이나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또한 젊은 날 그분들이 견디어야만 하였던 끔찍한 경험은, 그 후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사실은 보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들의 인생에그분들이 필요로 한 마음의 안정과 모종의 정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을 통해 사업 지원금이라는 경제적 보상에만 그치지 않고, 하시모토총리의 서한으로 과거의 잘못이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그분들의 생활 상황은 큰 폭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종료식에서는 무라야마 토미이치 이사장과 다나카 마키코(田中真紀子) 외무대신으로부터 PICN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가 소개되었습니다.

2001년 7월13일, 네덜란드사업실시위원회는 사업의 최종평가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전문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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