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념관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 여성 기금
디지털기념관 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사업 >각국∙지역의 보상 사업의 내용-한국
 
 각국∙지역의 보상사업의 내용 - 한국
 
대상국지역 신청접수실시기간 사업내용
한국 1997.1.11-2002.5.1  1) '사과금(atonement money)'(200만엔)
 2)의료・복지지원사업 (300만엔 규모)
 3)총리의 서한 등

[배 경]  

일본은 대한민국과 식민지 지배의 청산 및 국교수립을 위해 1965년에 일한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때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하기로 하였고, 한편 한국은 모든 재산 및 청구권을 포기하였습니다. 이 결과, 일본과 한국 및 양 국민 사이의 재산과 청구권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처리에 대해서 한국 내에 불만이 남았습니다.

1990년대에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한국정부는 '위안부'였던 분들을 인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였으며, 2004년 현재 207명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들에 대해 한국정부는 매월 일정액의 생활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들 207명 중 2002년 11월까지 사망한 사람이 72명에 달하며, 생존자는 135명, 이 중 해외거주자가 2명입니다.

한국정부는 아시아여성기금의 설립에 대해서는 당초 적극적인 평가를 하였으나, 이윽고 부정적인 평가로 바뀌었습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NGO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약칭:정대협)가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언론에서도 비판을 시작하자, 정부의 태도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금에 대한 '위안부'였던 분들의 태도는 다양하였습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었지만, 불만은 있지만 받아들인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받아들인다고 공공연히 밝힌 탓에, 비판과 압력을 받은 분도 있으며, 그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아시아여성기금 거부를 재천명한 사람도 나왔습니다.

한국  '위안부'였던 분들이 기금사무국을 방문

정대협은 유엔인권위원회 등에 대한 호소와 각국 관련단체와의 연대 등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며 이 활동은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의 문제가 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대협은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여 사죄할 것과 보상(補償)을 하는 동시에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데 활동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사업의 실시]  

아시아여성기금에서는 한국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피해자에 대해 사업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1996년 8월 기금운영심의위원회로 구성된 대화팀이 한국을 방문하여, 십수명의 피해자와 만나 사업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이 때 만난 피해자 중에는 김학순씨 외 2명이 기금을 거부한다고 밝혔으나, 다른 많은 분들은 '사과금(atonement money)'이 200만엔이라는 것은 성의 있는 조치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였습니다.

1992년 12월 가네다 키미코(金田君子, 가명)씨가 그 후 기금측의 노력을 인정하여, 기금사업을 받아 들이겠다고 표명하였습니다.

가네다씨에게는 기금을 받지 말라는 압력이 가해졌으나, 이윽고 다른 6명의 피해자도 받겠다는 뜻을 표명하였습니다.

한국의 전달식 가네히라 단장

1997년1월11일, 가네히라 테루코(金平輝子) 이사를 단장으로 한 기금의 대표단이 서울에 있는 호텔 등에서 7명의 피해자에게 사과금(atonement money), 총리의 서한, 이사장의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영상은 여기)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왔지만, 이런 제 활동이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이대로 어둠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 날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활동, 제 노력이 조금이라도 총리에게 알려진 걸까, 전달된 걸까 라는 식으로 생각되어서 정말 눈물이 넘쳐 흘렀습니다.

–도쿄지방재판소의 가네다 키미코 씨의 증언(총리의 사죄의 서한을 받았을 때의 심정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가네히라 단장은, 설명문(전문은 여기)을 한국의 언론 각사에 전달하여, 사업실시의 사실을 밝히고 기금의 자세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 한국 언론은 사업의 실시를 비난하고, 시민단체도 항의하였으며,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을 받은 7명의 피해자들에게는 강한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사과금(atonement money)' 등을 전달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압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피해자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도 기금에 있어서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금은 일시적으로 사업을 보류하고, 한국 사업을 실시하기 위한 조건 정비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내부에서는 기금의 사업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민간의 모금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모인 모금에서 피해자들에게 일정액의 원조금이 지급되었습니다만,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을 받아 들인 7명의 피해자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였습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1998년 1월6일, 한국의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등 네 개의 신문에 사업내용에 관한 광고를 게재하고, 사업의 재개에 나섰습니다. (전문은 여기) 즉시 피해자 분들로부터 받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기금은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을 실시하였습니다.

같은 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였습니다. 신정권은 같은 해 5월,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게 국가적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 대신 아시아여성기금의 사업을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위안부'였던 분에게는 생활지원금 3,150만원(당시 일본엔으로 310만엔)과 정대협이 모은 자금에서 418만원을 지급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한국정부는 142명에게 생활지원금의 지급을 실시하고, 기금의 사과금(atonement money)을 받은 7명과, 기금의 사과금을 받았다며 서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4명, 총 11명에게는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기금은 6월에 하라(原) 이사장의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서한(전문은 여기)을 보내, 기금의 '사과금(atonement money)'과 한국정부의 생활지원금은 성격이 다른 것이며, 따라서 양립할 수 있도록 인정해 달라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사업의 변화가 없자, 기금은 1999년 초 한국에서의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의 중지를 결단하였으며, 집단적인 의료 케어(care) 사업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한국측과 협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이미 신청절차를 밟고 있던 피해자 분들에게는 사업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전환에도 한국측의 협력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최종적으로 밝혀졌으며, 1999년 7월, 기금은 전환을 단념하고, 한국에서의 사업을 정지상태에 두기로 하였습니다.

기금의 사업을 받아들인 분들로부터는 다음과 같은 감사의 말을 전달받았습니다. "일본정부로부터,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러한 총리의 사죄와 사과금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일본 여러분들의 마음이라는 점도 잘 알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떤 피해자는, 기금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처음에는 기금 관계자와는 만나는 것도 싫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금의 대표가 총리의 서한을 낭독하자,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으며, 기금의 대표와 얼싸 안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위안부'로 겪은 고통과 귀국 후의 경험 등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상세사항은 여기) 일본정부와 국민의 사죄와 보상의 마음은 받아 들여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초로 받아 들인 7분들도, 수령에 관해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고 있는 다른 분들도, 한국내부에서 기금의 '보상 사업 (atonement project)'을 일본정부에 의한 책임회피의 방편이라고 보는 활동단체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기금은 보상 사업 을 받은 모든 분들이 사회적 인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업의 정지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초의 신문광고에서 한국의 사업신청 접수기한으로 발표한 2002년 1월10일이 다가왔습니다. 기금은,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사업의 정지상태를 지속시키며, 1월10일자로 사업을 종결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 후, 여러모로 절충한 결과, 단기간에 이러한 상황이 크게 바뀌기는 곤란할 것으로 판단, 2월20일, 사업의 정지상태를 해제한다고 발표하고, 2002년 5월1일자로 사업신청 접수를 종료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기금의 사업은 시민단체나 한국정부의 충분한 이해를 얻지 못한 상태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피해자 분들이 총리대신의 사죄의 서한과, 기금의 보상 사업(atonement project)을 받아 주신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Copyright(c) Asian Women's Fun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