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총리를 수반으로 한 자민당, 사회당, 사키가케당 3당의 연립정권이 탄생하였습니다.
같은 해 8월31일, 무라야마 총리는 전후 50년을 향한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였고, 그 마음을 국민과 나누기 위해 '폭넓은 국민 참여의 길'을 탐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문은 여기)
이 담화에 따라 여당 3당은 '전후50년 문제 프로젝트' (공동좌장 토라시마 카즈오(虎島和夫)자민당, 우에하라 코스케(上原康助)사회당, 아라이 사토시(荒井聡)신당 사키가케)를 출범시켰고 '위안부' 문제는 '종군위안부문제등 소위원회' (다케베 쓰토무(武部勤)위원장)에서 검토를 시작하였습니다.
여당과 정부내에서는 지금까지의 일본정부의 방침이 검토되었습니다. 정부는 지난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배상 및 재산 과 청구권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및 기타 관련 양국간 조약 등에 입각해 대응해왔다는 방침을 취해왔습니다. 따라서 새로이 국가가 개인에게 보상(補償 compensation)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당 내에서는 개인보상(補償)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였습니다. 의견대립은 조속히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조정되어, 1994년 12월7일, 이 문제에 관한 '제1차 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전문은 여기)
정부는 이 '보고'에 따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와 국민이 협력해서 '기금'을 설립, '위안부' 였던 분들에 대한 전국민적인 보상(償い atonement)의 마음을 나타내는 사업과 여성을 둘러싼 오늘날의 문제해결을 위한 사업을 추진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우선 헤이세이 7년도(1995년도) 예산에 '기금' 경비로 보조금 4억8천만 엔을 포함시켰으며, 1995년 6월14일, 이가라시 코조(五十嵐広三)관방장관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우호기금' (가칭)의 사업내용과 정부의 방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더불어 '기금' 설립을 호소하는 '발기인'을 발표하였습니다. 우선, (1) '위안부' 였던 분들에게 국민적인 보상(償い)을 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국민들에게 모금을 요청한다. (2) ' 위안부'였던 분들에 대한 의료, 복지 등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정부자금 등으로 지원한다. (3)이 사업을 실시할 때, 정부는 '위안부' 였던 분들에 대해 국가로서 솔직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4) 정부는 '위안부' 관련 역사자료를 정리해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다. 또 이와 관련해서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오늘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하는 데에 대해 정부자금 등으로 지원하는 것도 발표되었습니다.(전문은 여기) |